서울 강남의 한 가운데 논현동에 LPG충전소가 하나 있다. 

택시를 비롯해 수 많은 LPG 차량들이 가스를 채우던 학동역 사거리의 논현동 207 부지이다.

위치는 좋지만 가스충전소의 영업이익은 갈수록 악화되었고 재산세, 종부세는 가파르게 오르고 있었다. 토지가액에 비해 건물가액의 비중이 낮아 토지에 대한 중과세까지 부과되기 시작하면서 LPG충전소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LPG충전소는 일반 주유소와 달리 관련법상 복합개발이나 증축이 허용되지 않기에 더 늦기 전에 전면 신축개발을 추진해야 했다. 토지 소유자는 조만간 충전소를 허물고 신축건물을 지어 임대업을 하겠다고 결심한다.

개발하기로 결정은 했지만 무슨 용도의 건물을 어떻게 지어야 하는가.

부지 개발의 장애요인들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사업기획, 인허가, 건축물의 설계, 시공사 선정, 개발비 조달, 시공관리, 민원관리는 어떻게 헤쳐 나갈까. 신축건물의 운영관리나 처분은 어떻게 할 계획인가.

큰 흐름을 올바르게 정하고 분야별 전문가가 참여하며 단계별로, 체계적으로 실행해야 한다. 단추가 하나라도 잘못 끼워져서는 안 된다. 개발을 완성할 때까지 계속 변하고 진화하는 사업여건에 맞추어 가며 개발의 끝 날까지 완수해낼 Project Manager가 필요한 순간이다.

*이하 프로젝트매니지먼트를 수행하는 회사를 ‘PM사’로 줄여 쓴다.

토지 소유자는 강남이 개발되기 전부터 이 땅을 소유하고 있던 원 소유권자였고 이번 개발사업에서는 시행자가 되었다. 개발사업의 시행자는 건축주로 불리기도하고 발주처라고도 한다.(설계사나 시공사에서는 건축주라고 종종 일컫지만 발주처라고 하는 것이 그 의미나 뉘앙스로 볼 때 더 적절하다)

발주처는 2015년 11월 이 개발사업을 총괄할 PM사로 크레던스를 선정했다. LPG충전소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하루도 쉬지 않고 24시간 운영 중이었지만, 부지개발과 관련된 모든 일들이 PM사, 크레던스를 통하여 추진되었다. 개발에 관련된 모든 창구는 PM사로 일원화되었고 PM사에게는 발주처의 대리인 자격까지 부여되었다.

기획의 첫 단추, 건축물의 주용도 결정

PM은 이제 이 땅을 무엇으로 개발할지 발주처와 함께 결정해야 한다.
먼저 건축물의 용도를 정해야 하는데 이 토지에 개발가능한 건축물의 주용도를 네 가지로 압축한 후 각 대안에 대해 분석하고 논의한다. 이 4개의 후보 용도는 오피스빌딩, 근생빌딩, 호텔, 오피스텔이었는데, 이 부지의 입지특성, 인근지역 부동산 시장특성에 대한 이해의 기반 위에서 각 대안별로 의견을 나누었다. PM사와 발주처의 논의의 결과를 요약하면 이렇다.

이 지역에서 오피스는 공급에 비해 수요가 충분치 못하여 적잖은 공실이 우려되고 근린생활시설은 저층부 수요는 강한 편이지만, 중고층부 수요는 약하다고 판단된다. 또한 이 부지의 도시계획 특성상 오피스와 근린생활시설에 대해서는 용적률 인센티브가 적용되지 않는다. 호텔에 대해서는 용적률 인센티브를 활용할 수 있어 긍정적이었던 반면 임대차 리스크에 대한 부담이 컸다. 이 사업은 분양을 하지 않고 준공 후 임대를 목적하고 있으므로 임대차 리스크가 존재할지라도 제어는 가능해야 한다. 호텔을 개발한다면 호텔 운영사에게 장기간 임대를 줄 계획이었는데 단일 임차인(one-tenant)과의 장기적 임대차에 상존하는 임대차 리스크가 제어 가능한 수준을 벗어난다고 판단했다. 만약, 부지의 입지와 규모가 호텔에 최적이라면 임대차 리스크는 제어 가능한 수준으로 매우 낮아진다. 하지만 이 부지는 호텔로서 ‘적정’하다고는 할 수 있었지만 ‘최적’이라고 판단되지는 않았던 것이다.

수차례에 걸친 논의와 검토 끝에 논현동 207 부지는 오피스텔과 도시형생활주택으로 구성되는 임대주택이자 저층부에 근생시설이 배치된 주상복합건물로 개발하기로 결정했고 기준 용적률에 더하여 용적률 인센티브도 적용 받을 수 있다.

건축물의 주용도를 결정하는 과정은 발주처의 사업목표 잘 부합하는 것인가, 부지의 입지와 부동산 시장특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도시계획 및 인허가 조건은 어떠한가, 개발 후 완성된 자산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에 대한 올바른 답을 찾는 최선을 다해 찾는 신중한 과정이고, 발주처와 PM사의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한 그야말로 기획의 첫 단추이다.

인허가, 출전을 앞 둔 선수가 만나게 되는 가장 엄격한 잣대

개발사업은 마치 육상종목의 허들처럼 수없이 많은 장애를 만나고 넘어서야 한다. 하지만 선수가 경기에 나가기도 전에 실격처리가 되면? 아니면 경기전 심사에서 허들경기에는 나갈 수 없고 그보다 하위 종목에나 겨우 출전할 수 있다고 한다면?

좋은 입지일수록 규제가 많고 복잡하다. 논현동 207 부지는 과거 강남 토지구획정리사업과 지하철 7호선 학동역 개통이라는 개발호재가 있었던 땅이고 그 시절부터 이미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지정되어 규제를 받고 있었다. 이 부지는 필지별 단독개발 금지, 대로변 차량출입 금지, 높이제한, 용도제한 등 규제 때문에 그대로는 개발 불가능한 땅이다. 이미 다 지어진 인접한 두 개의 건물 소유자를 각각 설득해 함께 주상복합건물을 짓자고 해야 할 판인데 그들은 공동개발 의사가 전혀 없다. 지구단위계획의 기존 규제를 따라 이 땅에 신축건물을 지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구청에 건축허가를 접수하려면 먼저 지구단위계획부터 바꾸어야 한다. 지구단위계획의 변경은 서울시 소관이고 단 한 개의 필지를 개발하기 위해 서울시 관계부처 협의 및 심의상정을 통해 지구단위계획을 변경하여 ‘단독개발 불허’를 ‘단독개발 가능’으로, 대로변 차량출입 금지구간에 ‘차량출입구 개설’을 이루어내야 한다.

서울시의 지구단위계획 변경, 강남구청의 건축허가를 순차적으로 통과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건축설계사와 도시계획엔지니어링 회사가 필요하다. 각 회사를 선정, 투입하여 설계사는 기획설계를 하고 도시계획엔지니어링사는 지구단위변경 절차와 서류를 꾸려 여러 관계부처의 실무 공무원과 사전협의를 했다. 우리에게 개발허가라는 출전 자격이 주어질지, 주상복합개발이라는 종목에 출전이 허락될지 어떨지, 묘연하다.

인허가 리스크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장담을 않지만 그래도 ‘가능하다, 가능하다’하며 한창 일이 진행되던 중 도시계획엔지니어링 회사로부터 대답이 왔다. 우리가 원하는 용적률 인센티브가 적용되는 임대주택은 불가능하고, 나머지 단독개발이나 차량출입구 개설을 위한 지구단위 변경도 만만치 않다는 것. 다시말해 우리가 가능하다고 보았던 개발규모는 필히 줄여야 하고, 단독개발이 가능하게 될지, 차량출입구 개설이 불가하여 사실상 맹지의 토지로 남을지도 해봐야 안다는 것이다. 믿었던 엔지니어링사 담당자 판단이 ‘가능하다, 가능하다’에서 ‘안되거나 불분명하다’로 바뀌다보니 상황은 모호해지고 개발 의욕은 한풀 꺾이게 된다. PM은 도시계획엔지니어링을 하는 다른 업체를 투입시킬지, 직접 팔을 걷어붙여 인허가 실무 일선에 나설지 선택의 기로에 선다. 설계사는 안타까운 눈으로 PM을 바라볼 뿐이다.

다음 편 프로젝트매니지먼트 스토리로 계속
제2편 난관에 봉착한 인허가를 통과하는 법
제3편 건축물 기획은 건축가가 다 하는 것 아닌가요?
제4편 시공사와 금융 셋업
제5편 첫 삽을 뜨다 (착공, 민원, 세금)
제6편 공사는 시공사에게 맡기면 다 된 것 아닌가요?